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흥동 국교생 살인 누명 사건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1991년]] [[9월 30일]], [[서울특별시|서울]] [[마포구]] [[대흥동(서울)|대흥동]]에 거주하던 9살 권모 양이 자택에서 칼에 찔리고 불에 타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. 처음에는 범인을 성인으로 추정하였으나, 경찰은 범인을 1살 위인 오빠 권모 군이라고 발표하여 전국이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. 당시 언론에서는 맞벌이 가정에서 자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권모 군이 부모의 여동생 편애에 앙심을 품고 폭력적인 비디오물에 심취해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도했다.[* 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91100700329115001&editNo=15&printCount=1&publishDate=1991-10-07&officeId=00032&pageNo=15&printNo=14191&publishType=00010|경향신문 기사]], [[https://news.joins.com/article/2647429|중앙일보 기사]]] 또한, 어른이 살인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방화까지 저지르는 지능적인 수법을 썼다고 혀를 내둘렀다.[* [[http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91100800289114003&editNo=4&printCount=1&publishDate=1991-10-08&officeId=00028&pageNo=14&printNo=1049&publishType=00010|한겨레 기사]], [[https://newslibrary.naver.com/viewer/index.nhn?articleId=1991100700209222006&editNo=2&printCount=1&publishDate=1991-10-07&officeId=00020&pageNo=22&printNo=21613&publishType=00020|동아일보 기사]]] 해당 사례는 10월 12일자 MBC <생방송 여론광장> '누가 동생을 죽였나' 편에서도 다루었다. [[초등학교]]를 [[국민학교]]라 부르던 시기에 발생한 사건이라 당시 언론에서는 권모 양을 국민학교생의 약칭인 국교생으로 보도하였고, 이 문서의 제목도 국교생으로 표기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